정부가 4일 내놓은 ‘2016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는 사면초가 상태인 한국 재정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박근혜정부 들어 습관적으로 반복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 확장적인 재정 정책으로 나랏빚이 급증하는데,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충당부채라는 ‘밑 빠진 독’까지 채우느라 재정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연금 충당부채는 당장 나갈 돈은 아니지만, 연금지급 의무에 따라 미래에 지급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채를 말한다.
박근혜정부 4년(2013년~2016년 말) 동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를 포함한 국가채무(D1)는 184조 원 늘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노무현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 말 17.6%에서 이명박정부 출범 직전인 2007년 말 28.7%로 높아졌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전인 2012년 말에는 32.2%,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둔 지난해 말에는 38.3%까지 치솟았다. 차기 정부 말에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0%를 훌쩍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이 작성하는 ‘연결 재무제표’와 유사한 개념으로 발생주의 기준으로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정리한 국가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연금 충당부채가 나랏빚의 ‘복병’으로 등장한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충당부채로 구성된 연금 충당부채는 지난해 말 752조6000억 원으로, 2015년(659조9000억 원)보다 92조7000억 원 늘었다. 지난해 전년 대비 국가 부채 증가액(139조9000억 원)의 66.3%를 차지한다. 나머지 33.7%(47조2000억 원)는 국채·주택청약저축 등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연금 충당부채 증가의 주된 원인은 저(低)금리다. 지난해 저금리(할인율 하락)에 따른 충당부채 증가액은 52조5000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금리 하락에 따른 연금 충당부채 증가를 고려한다고 해도,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불합리한 수급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는 나랏빚 급증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차기 정부에서 공무원연금을 다시 수술하고, 군인연금도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재원 마련 대책도 없이 대선 주자들이 무분별한 공무원 수 늘리기를 포함한 포퓰리즘 공약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충당부채는 전년 대비 68조7000억 원 늘어난 600조5000억 원이다. 공무원 재직자와 수급자 수가 늘면 공무원연금 충당부채도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부 대선 주자들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공무원 수를 급격히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공무원 81만 명을 포함한 공공 부문 일자리 130만 개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공무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 공무원연금 충당부채가 많이 증가한다는 것은 상식(常識) 중의 상식”이라고 단언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하면 아직 나쁘지 않은 편이다. 국제 비교에 사용되는 일반정부 부채(국가 채무+비영리공공기관 부채·D2)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GDP의 40%를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OECD 회원국의 평균치(116.3%)에 비해 훨씬 낮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로 앞으로 ‘쓸 돈’이 대부분의 OECD 회원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 상태가 유지되기만 해도 차기 정부에서도 나랏빚이 많이 늘어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며 “공무원 수 급증 등의 ‘돌발 변수’까지 발생하면 나랏빚 증가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처 : 문화일보 / 조해동 기자 haedong@munhwa.com
